37번이나 ‘공정’ 언급한 문 대통령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젊은 세대, 입시·병역·취업 둘러싼 ‘공정’ 이슈에 민감
평등주의 이념 586과 달리 능력주의 자연스럽게 여겨
자기들도 믿지 않는 평등 사회 약속, 절차의 공정 무시
공정 요구를 ‘평등사회 가로막는 수구세력 전쟁’ 여겨
젊은 세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세 가지 이슈가 있다. 입시·병역·취업이 그것이다. 그중 조국 사태(입시)와 추미애 사태(병역)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는지, 대통령은 오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만 언급했다. “때로는 하나의 공정이 다른 불공정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이 사안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해소’하려는 정부의 선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선의는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전시 행정이었다. 그저 카메라 앞에서 ‘비정규직을 챙기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연출할 생각에 거시적이고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요구되는 중요한 노동정책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발표해 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노조와 노조가 부딪히고, 정규직 전환자와 취업준비생이 서로 반목하게 됐다. 심지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탈락해 애먼 일자리만 잃은 이들까지 생겼다.
아무리 생각 없는 말이라도 그 말이 대통령에게서 나왔다면 지켜져야 한다. 그 뒤치다꺼리는 구본환 사장이 맡았다. 하지만 현행 법규상 직고용은 불가능하니, 이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려면 편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결국 그 책임은 구 사장이 혼자 뒤집어쓰고 말았다. 잘못은 청와대에서 저지르고 책임은 애먼 사람이 지게 된 셈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공정이다.
당시 민주당의 김두관 의원은 공정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취준생들을 크게 꾸짖었다. “조금 더 배우고 정규직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다.” 전형적인 586의 마인드다. 노동가치설에 입각한 전통적인 평등주의의 반론. 딱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취준생들의 분노를 가슴으로 느끼지도, 머리로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데에 있다.
과정만은 공정해야
그들은 누군가 선발시험을 보지 않고 이대생이 되고, 의대생이 되고, 판·검사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고, 공사의 정직원이 되는 것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긴다. ‘조금 더 배우고 정규직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불공정’이 아니다. 성적에 따른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에게 불공정은 시험도 안 치른 이들이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평생단과대학을 허용하면 이대 졸업장의 가치가 떨어진다. 공공의대를 허용하면 의사의 ‘퀄리티 컨트롤’이 망가진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이들의 특권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 특권과 별 관계 없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학교의 토론수업에서 이른바 ‘스카이 캐슬’의 부당한(?) 특권을 비판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걔들은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잖아요.”
젊은 세대에게는 아예 평등에 대한 기대가 없다. 그들에게 출발 조건의 불평등은 ‘운명’이다. 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불평등은 ‘정의’다. 그러니 아직 통제 가능한 것은 오직 ‘과정’뿐. 그래서 그 과정의 공정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으로 쟁취한 특권은 맘껏 누려도 되는 보상이고, 공정한 경쟁에 져서 안게 된 차별은 군말 없이 치러야 할 죄과인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