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뱃살이 늘어 고민인 남편이 내장비만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abc 주스를 마셔보겠다 합니다. 주스의 재료인 사과와 비트, 당근을 사서 갈아 먹기 좋게 깍둑썰기해 두고, 사과는 미리 잘라두면 갈변이 되니 먹기 전에 자를 생각으로 냉장고에 넣어 두었죠.
뱃살 빼기의 일환으로 공복 달리기도 시작해, 일찍 일어난 남편은 제가 일어나기도 전에 주스를 갈아보겠다며 분주합니다. 그 소리에 비몽사몽 일어나 보니 남편은 사과를 4분의 1로 잘라 큰 크기 그대로 믹서기에 넣어버리는 겁니다. 이미 잘라둔 것의 크기도 확인했을 터이고, 잘 갈리지 않을 것이 뻔한데 덩어리째 사과를 넣어버린 것이 답답했던 내 입에서 “아니 믹서기도 안 써봤어”라는 말이 쑥 나와버렸죠. 말이 나오는 순간 아차하지만 이미 말은 나온 후입니다.
남편이 믹서기에 사과를 덩어리째 넣어버린 것이 답답했던 내 입에서 ’아니 믹서기도 안 써봤어“라는 말이 쑥 나와버렸습니다. 말이 나오는 순간 아차하지만 이미 말은 나온 후입니다. [사진 pxhere]
남편의 흥겨웠던 아침 분위기는 순간 바뀝니다. 잠시 정적 후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느냐고 입을 연 남편은 갈리지 않으면 알아서 다시 꺼내 자를 수도 있을 것인데, 왜 늘 자신의 기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먼저 '버럭'부터 하는지 묻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왜 그런지 요즘 저는 짜증이 늘었고 남편은 '버럭'하는 나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오바마'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죠. 늘 한순간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말과 행동이 문제입니다.
그 상황에 다들 당황해하자 눈물을 닦던 엄정화는 정재형에게 “그럼 평소에 잘해주던가,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잘해주냐. 우리 부부싸움이냐?”라고 말해 상황을 웃음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같이 있을 시간이 많다는 것은, 사소한 일로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욱 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긴 심호흡으로 한 템포 내 감정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챙길 수 있길 바라봅니다. [사진 pixabay]
부부 역시 여러 일로 티격태격하다가도 문득 마음 한 켠에서 '그래도 이만한 사람이 없지'라고 생각하죠. 그러면서도 정작 입 밖으로는 표현이 잘 안 됩니다. 반대로 알아주겠지, 받아주겠지 하며 불편한 티는 왜 그리도 금세 튀어나오는지요. 잘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부부 역시 혹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좋은 부부이진 않았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