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관의 목조르기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편에서는 ‘인종차별은 옛날 일’이라거나 지금은 인종차별이 거의 없고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 더 심하다고 생각하는 백인들이 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특권을 오래 누리다보면 평등이 억압 같이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누려온 특권을 무시해왔거나 또는 자신은 그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차별을 정당화 해온 경우 평등을 마주하면 원래 내 것이었던 당연한 권리(특별대우)를 빼앗긴다는 위협과 억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은연 중에 차별을 지지하면서도 인종차별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은 있어서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거나 차별을 해놓고도 뻔뻔하게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들 이야기 한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흑인들은 위험하다거나 유색인종과 함께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인종차별적인 세상에서 태어난 이상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 흑인의 인권을 위해 싸워 온 넬슨 만델라도 자신이 탄 비행기의 기장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내가 알든 모르든 나와 항상 함께 하며 나의 생활 모든 부분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차별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알든 알지 못하든 항상 공기처럼 내 안을 들락날락 거린다. 평생을 인권운동에 바친 넬슨 만델라도 이러한데 우리 중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제일 과대평가하듯, 인종 차별 역시 차별의식이 가장 심한 사람이 자신의 차별적 태도를 가장 과소평가한다는 발견이 있었다. 즉 가장 심하게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당당하게 자신은 절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력이 늘어나고 깊이가 쌓여갈수록 더 자신이 뭘 몰랐다는 깨달음과 함께 배울 것이 늘어난다.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뭘 모를 때는 자신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즉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만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만다. 반면 지식이 쌓이고 어느 정도 시야가 트이면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파악하게 되면서 현실적인 자기 지각을 갖게 된다.
차별 또한 마찬가지다. 차별이 무엇인지,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관심이나 개념이 없고, 차별의 역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며, 차별을 개선할 의지도 없으면 눈 앞에 차별을 두고도 그것이 차별인지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차별을 해놓고도 자신은 차별한 적 없다고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끊임없이 자기 안의 차별에 대해 성찰한 넬슨 만델라와 정 반대의 모습이다.
더 이상 차별은 없다고, 되려 특권을 누려온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 심하다고 하는 말처럼 아직도 차별이 심각함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나는 아무런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공명정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수록 누구보다 내가 가장 심각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음을 기억해보자.
※참고자료
West, K., & Eaton, A. A. (2019). Prejudiced and unaware of it: Evidence for the Dunning-Kruger model in the domains of racism and sexism.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46, 111-11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