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힙합 바지를 입은 10대 소년들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틱톡'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1996년 순정만화지 '윙크'에 연재된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아무도 내가 슬프다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
지금 보면 민망하지만, 그 시절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명대사였다. 우연히 'DDP 언플러그드 보이'를 마주친 그날 밤, 틱톡 앱을 설치해봤다. 거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틱톡 전 세계 사용자 수는 8억명, 기업 가치는 100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한다. 앱 안에는 슬픔은 물론이요, 생로병사의 비밀이나 주화입마의 고통까지도 힙합으로 치환할 것 같은 소년·소녀들이 모여 있었다.
짧은 음악에 맞춰 화장하고, 춤추고, 증강현실(AR) 스티커와 특수 효과로 장난치는 1020세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영상을 구경하다 보니, 기성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의사소통 체계를 구축한 신(新)인류가 보였다.
'애들 장난'으로 웃어넘기기엔, 영향력이 예상보다 컸다. 이들은 문자와 몸짓, 음악을 결합한 디지털 언어로 뭔가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대부분은 쓸모없고 허무해 보이는 것들이다. 가령 '선글라스챌린지'는 머리에 얹은 선글라스를 고개만 까딱 움직여 쓰는 놀이고, '쭉뻗챌린지'는 길을 가다 발을 쭉 뻗는 놀이다. 왜들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용자들은 챌린지를 통해 연대의식·소속감을 쌓고, 집단의 목소리를 내며 플랫폼 여론을 장악하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챌린지만 있는 건 아니다. 틱톡 세대는 지난 6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주도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선 유세장을 텅 비워버리는 위력을 보여줬다. 놀란 세계 언론은 'K팝을 좋아하는 10대 틱톡 사용자'를 분석하느라 애쓰고 있다. 트럼프는 틱톡이 사용자 정보를 중국 정부에 넘길 수 있어 미국 내 사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와중에 마이크로소프트와 트위터는 틱톡 미국 법인 인수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선 젊은 층을 겨냥한 틱톡 댄스 학원이 유행하고 있다.
정보 생태계의 역동성,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천부적으로 이해하는 틱톡 세대는 어떤 언행을 해야 주목받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잘 아는 듯하다. 스마트폰으로 말과 글을 배운 디지털 액티비스트들은 어느덧 기성세대만큼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글로벌 정치권력과 자본이 틱톡과 씨름할 때, 서울 여의도에선 '쌍팔년도챌린지'가 한창이다. 한편으론 죽창가·대자보보다 틱톡의 언어가 무섭다는 걸 그들이 당분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1주택자챌린지 #검언유착댄스 같은 걸 보게 될까봐 그렇다.
쇼트 비디오 여전히 방황중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바이트댄스의 15초 쇼트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국내 시장 진출에 난항을 겪고있는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유럽 일부에서는 선정성 논란까지 불거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지나친 광고 피로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을 대거 섭외해 강력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나 오히려 역효과만 나고 있다는 비판이다.
틱톡의 무한성장..‘눈부시네’
중국의 바이트탠스가 만든 15초 쇼트 동영상 플랫폼 틱톡은 1020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6초 동영상 플랫폼인 바인의 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바이트탠스는 텐센트의 위챗을 위협하는 대형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자기만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뮤지컬리와 합병한 후 틱톡의 성장에는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뮤지컬리가 립싱크를 통한 뮤직비디오라는 포맷에 한정됐다면 틱톡은 자유로운 음악과 댄스의 콜라보를 전제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누르고 글로벌 SNS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시장조사기관인 센서타워(SensorTower)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틱톡은 지난 1분기 전세계 애플 앱스토어 다운로드 순위에서 유튜브를 제치고 1위에 올랐으며 9월에는 미국 월간 다운로드 수가 처음으로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을 넘어서는 등 아시아는 물론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그 입지를 확장하고 있다. 현재 틱톡은 세계 150개 국가에서 75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아이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에서 20분 미만 동영상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시청자는 무려 3억5000만명에 이른다. 그 중심에서 틱톡은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틱톡은 최근 15초라는 한계를 넘어 2분에 달하는 동영상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텐센트의 위챗이 틱톡과 동일한 15초 분량의 서비스를 시작하자 차별화를 위해 2분짜리 동영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틱톡은 국내에서도 강력한 마케팅을 벌이며 1020 세대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틱톡은 지난 14일 끝난 2018 MAMA(Mnet Asian Music Awards)에서는 공식 스폰서 겸 투표 채널 활동을 벌였다. CJ ENM이 주최하는 아시아 최대 음악 시상식 MAMA는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한국, 일본, 홍콩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됐으며 이번 행사에는 방탄소년단, 워너원, 트와이스 등 아이돌 그룹부터 로이킴, 선미 등 올 한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해 이목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틱톡은 전세계적으로 수억명의 사용자들이 활동하는 자사의 플랫폼에서 지난 11월 1일부터 12월 9일까지 본 행사에 대한 공식 투표를 진행했다.
▲ 틱톡의 국내 마케팅이 강하게 벌어지고 있다. 출처=틱톡
크리스마스에도 ‘#크리스마스댄sing쇼’ 챌린지, ‘틱톡 플래시몹 & 창현거리노래방 쏭카페’ 및 ‘#산타변신’ 챌린지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진행했으며 2018 SBS 가요대전’에 공식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틱톡 공식모델인 아스트로의 차은우, 위키미키 최유정과 함께하는 ‘#하트뉴이어챌린지’도 진행했다.
틱톡의 그림자
틱톡은 중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기존 SNS 강자들을 압도하며 순항하고 있다. 바이트댄스는 뉴스 서비스 앱 진르터우탸오와 틱톡을 중심으로 글로벌 ICT 시장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폭발적인 성장세와 비례해 그 그림자도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선정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AFP 통신은 지난 26일(현지시간) 틱톡의 선정적인 콘텐츠로 많은 유럽의 학부모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많은 아이들이 틱톡에 댄스 영상을 올리며 선정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부적절한 몸짓을 하는 점이 문제다. 그런 이유로 틱톡의 저변이 넓은 프랑스의 경우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틱톡에 올라오는 선정적인 콘텐츠를 지나치게 많이 소비하는 것을 우려, 앱 삭제를 유도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비슷한 문제로 한 때 틱톡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루디안타라 정보통신부 장관은 “틱톡에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유해한 콘텐츠가 많다”면서 틱톡의 서비스를 강제로 막았다. 틱톡 경영진들이 현지로 날아가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틱톡 서비스는 정상화 전철을 밟았으나, 비슷한 논란은 각 지역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 틱톡을 통해 성매매 제안까지 오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내 시장에서 틱톡의 고민은 저변 확대다. 1020 세대를 중심으로 존재감은 상당히 커졌지만, 그 이상의 동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미디어 시장은 1인 크리에이터 시장이 발전하며 일찌감치 유튜브를 위시한 뉴미디어 플랫폼 전성시대가 열렸으나 유독 틱톡의 존재감은 미비하다는 말이 나온다.
틱톡이 국내 시장에서 저변을 확대하려 강력한 마케팅을 구사하는 가운데 ‘틱톡 광고 피로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 검색창에 ‘틱톡’을 검색하면 ‘틱톡 광고 극혐’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제일 먼저 나온다. 유튜브 등을 통해 전방위적인 마케팅 공세를 벌이면서 틱톡 특유의 광고가 지나치게 많이 노출, 이용자들이 오히려 반감을 갖는 사례다.
글로벌 시장 정도의 문제제기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틱톡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텀블러 등 일부 외산 SNS의 선정적 콘텐츠에 대한 논란이 나름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과 달리, 틱톡을 둘러싼 선정 콘텐츠 논란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실제로 틱톡을 보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과도한 성인안무를 통해 관심을 유도하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가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색창에 불법적인 성인물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적나라한 콘텐츠가 나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 회원가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색창에 불법 성인 콘텐츠를 검색한 결과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탄압 일변도의 자세로 새로운 가능성을 재단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이유로 틱톡의 선정적 콘텐츠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인도네시아 등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틱톡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를 무작정 국내 시장에 도입할 필요도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외산 IT 업계의 플랫폼이 국내 서비스와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규제 환경에서 무차별적인 공세에 나서는 것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0대들이 틱톡 등 새로운 플랫폼을 발굴해 음악과 소통을 동시에 추구하는 등 ‘그들만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장면도 중요하다. 이를 오로지 강압적인 탄압으로만 일관한다면 뉴미디어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 타진은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현재의 확실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그저 '뉴미디어니까, 10대들이 좋아하니까'라며 덮고 지나가는 것은 잘못된 상황접근이라는 말이 나온다.
틱톡 자체가 '인싸(인사이더의 준말, 집단 내에서 각광받는 사람)'를 갈망하는 10대들의 욕망을 건들였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틱톡 코리아 관계자는 "틱톡은 커뮤니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부적절한 행동을 감시하고 예방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인력도 항시 동원하고 있다"면서 "틱톡 사용자들이 창의성을 공유하고 키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틱톡 커뮤니티의 재미와 안전을 동시에 보장하기 위해 보안 기능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